PleasureLab


플레져랩의 매장 내부 모습. 한가운데에는 생화와 함께 다양한 섹스 토이가 진열돼 있다. / 오종찬 기자플레져랩의 매장 내부 모습. 한가운데에는 생화와 함께 다양한 섹스 토이가 진열돼 있다. / 오종찬 기자

국내에서도 성(性) 담론은 더 이상 ‘은밀한’ 축에 못 낀다. 예전 같으면 ‘19금’에 속했던 이야기들도 TV에 자연스러운 소재와 화제로 등장한다. 청소년 사이에 ‘혼전 순결’에 관한 고정관념도 약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은 있다. 아직도 ‘성인용품’에 관한 한 대놓고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시선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입 밖에 꺼내기도 조심스런 이 ‘어른 장난감’을 대담하게도 밝은 조명 아래 내놓고 사업을 시작한 청년 사업가들이 있다. 두 명의 공동 창업자 모두 20대 미혼 여성이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플레져랩(Pleasure Lab)’의 곽유라(28)와 최정윤(29) 공동 대표. 각각 대학병원 간호사와 프리랜서 외신 기자로 일했던 두 사람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색다른 창업에 도전했다. 지난 8월 ‘여성 친화적인 성인용품점’을 표방하면서 문을 열었다. 개점 한 달 반쯤 되는 지난 17일 매장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플레져랩 입구의 모습. 가게 어디에도 ‘성인용품점’이라는 글씨는 찾아볼 수 없다. / 윤예나 기자플레져랩 입구의 모습. 가게 어디에도 ‘성인용품점’이라는 글씨는 찾아볼 수 없다. / 윤예나 기자

가게는 합정역 7번 출구 인근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성인용품점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외관의 첫 인상은 고급 패션 부티크다. 검정색 바탕 위로 하얀 발광체 ‘PLEASURE LAB’이 빛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형형색색 다양한 형태와 모양의 섹스 토이(sex toy)가 환한 LED 조명을 받으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 조명 환하게 밝힌 ‘성인용품 박물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매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진열대. 그 위로 고운 화병에 꽂힌 생화와 함께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섹스 토이들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매장 벽 쪽으로는 책과 문구류를 시작으로 바이브레이터 같은 장난감, 콘돔, 윤활제, 마사지 젤, 과감한 디자인의 여성용 코스튬 의상이 차례로 진열돼 있다. 마치 고급 브랜드샵에서 의류와 구두, 핸드백 같은 고급 잡화를 구경하는 것 같다. 샘플로 비치된 제품들은 하나하나 자유롭게 만져볼 수도 있다. 마침 진열대 위에 놓인 링 모양의 제품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물었더니, 매장을 안내하던 최 대표가 앞으로 나섰다.

여성 친화적인 성인용품점을 표방하는 ‘플레져랩’ 내부. 패션 부티크나 잡화점처럼 화사한 조명으로 밝게 꾸몄다. / 오종찬 기자여성 친화적인 성인용품점을 표방하는 ‘플레져랩’ 내부. 패션 부티크나 잡화점처럼 화사한 조명으로 밝게 꾸몄다. / 오종찬 기자

“커플이 함께 사용하면 좋은 제품인데요, 사용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전원 켜는 단계부터 사용 방법, 충전 방법과 브랜드에 관한 내용까지 물 흐르는 듯 설명이 이어졌다. 쑥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다. 설명하는 사람이 그러니 묻는 사람도 거리낄 게 없다. 그래도 행여 남들 눈이 신경쓰여 매장 출입을 주저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약 쇼핑제도 운영한다. 이른바 ‘프라이빗 쇼핑(개인 구매)’ 서비스. 매주 일요일은 시간에 따라 사전 예약한 손님만 매장 내에 입장하도록 해 자유롭게 쇼핑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제품 판매 외에도 다양한 문화 행사도 기획한다. 여성이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성적인 취향을 알아가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추석 명절인 이달 27일 저녁에는 여성 고객과 함께하는 무료 영화 상영회를 연다. 행사 이름은 ‘플레져랩과 함께하는 오르가즈믹 무비 나잇(Orgasmic Movie Night)’. 1880년대 영국에서 인류 최초의 전동 바이브레이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다룬 영화 ‘히스테리아’(2011)를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도 나눌 예정이다. 참가 신청을 받아 여성 10명을 선착순으로 초대한다. 참가비는 없고, 이날 저녁 함께 영화를 보며 나눌 명절 음식을 가져오면 된다. 곽 대표는 “여성들이 성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화 상영회나 건강 상식을 전달하는 세미나 등을 꾸준히 열 계획”이라고 했다. ◆ 글로벌 거래 규모 17조원 달하는 섹스 토이 시장...국내 시장은 갈 길 멀어 그동안 국내에서 성인용품점이라면 흔히 지방 국도 어귀나 갓길에서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섹스 토이’는 버젓한 상품이자 거대한 산업 분야다. 글로벌 통계 정보 사이트 스태티스틱 브레인(Statistic Brain) 집계에 따르면, 2014년 현재 글로벌 섹스 토이 시장의 거래 규모는 150억달러(약 17조4300억원)에 이른다. 마켓워치는 “2020년까지 520억달러(약 60조424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고 전한다.

성인용 섹스 토이부터 여성용 코스튬의상까지 다양한 성인용품을 판매하지만, 매장 내부는 패션 부티크처럼 환하다. / 오종찬 기자성인용 섹스 토이부터 여성용 코스튬의상까지 다양한 성인용품을 판매하지만, 매장 내부는 패션 부티크처럼 환하다. / 오종찬 기자

독일에서는 1960년대 여성이 창업한 성인용품점 베아테 우제(Beate Uhse)가 주식 시장에 상장해 대형 체인점을 운영한다. 전자제품 제조업체 필립스(Philips)도 여성용 바이브레이터를 출시해 이 시장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첨단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스마트 섹스 토이’를 선보이고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그늘진 영역에 속한다. 수요는 있지만, 음성적인 거래가 워낙 많아 정확한 규모도 잡히지 않고 있다. 한국 성인용품 제조업체 엠에스 하모니(MS Harmony)의 노태완 해외사업본부 이사는 “많은 업체가 중국 보따리상을 통해 불법으로 성인용품을 유통하고 있어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면서 “업계 전문가들은 대략 연간 150억~200억원 정도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노 이사는 “특히 여성용 제품인 바이브레이터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대략 1억명 정도가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업계를 선도하는 회사인 독일 펀팩토리(Fun factory), 스웨덴 레로(LELO)사의 시장 점유율이 각각 1.7%, 0.8% 수준에 불과해 향후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 곽유라, 최정윤 대표 “여성이 당당하게 찾는 공간 됐으면” -플레져랩은 어떤 곳인지 소개해 달라. 최정윤(이하 최): 여성 친화적인 성인용품점이다.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를 목표로 세웠다. 사업 초기인 지금은 성인용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본적인 성생활에 필요한 콘돔, 윤활제 등의 용품과 성인 여성의 성생활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섹스 토이와 란제리류를 판매한다. 또 삶에 활력을 더해주는 향초, 마사지 젤, 재치 있는 메시지를 담은 문구류까지 다양한 상품을 팔고 있다. 이런 물건을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고, 영감을 얻어가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국내에 올바르고 밝은 성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문화 사업도 함께 한다. 개점식을 오픈 파티 형태로 했다. 라이브 DJ가 준비한 트렌디한 음악을 배경으로 파티를 열었다. 우리 취지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대학생부터 아나운서, PD, 출판사 대표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20~30대 젊은이들이 모였다. 이런 개점 행사까지 연 이유는 우리 또래 젊은이가 ‘성인용품점’에 와서 섹스 토이를 구경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결코 어색하거나 부끄러운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도 성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화 상영회, 의료 세미나, 좌담회 등을 꾸준히 열 예정이다.

사진 왼쪽부터 곽유라, 최정윤 플레져랩 공동 대표 / 오종찬 기자사진 왼쪽부터 곽유라, 최정윤 플레져랩 공동 대표 / 오종찬 기자

-왜 이름을 ‘플레져랩’이라고 했나? 최: 우리 철학을 담았다. 말 그대로 ‘기쁨 연구소’란 뜻이다.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스스로 기쁨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다. ‘즐거움’ ‘쾌락’을 뜻하는 ‘플레져(pleasure)’란 단어를 찾았다. 연구소라는 뜻의 랩(LAB)을 붙인 건, 우리도 즐거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성적 취향은 다르다. 이 공간에서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고 생각하고,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 실험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곽유라(이하 곽): 우리 회사 슬로건이 ‘Discover Your Bliss(당신만의 더없는 행복을 찾으세요)’다. 자신의 행복, 성적인 기쁨은 누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우리 가게를 찾는 여러 성인 남녀가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물건을 들여다 보고, 자신의 몸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길 권한다. 우리는 행복해질 줄 아는 사람이 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런 이들이 많은 사회가 선진 사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문화 흐름이 바뀌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몸과 성, 섹스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탐구를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특히 여성들이 성적 기쁨을 찾는 것을 ‘여자가 너무 적극적이다’ ‘문란하다’ 등으로 굴레를 씌우곤 한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바꿔 나가는데 일조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목표로 삼은 주 고객층은? 곽: 물론 최대한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에게 소개하고 싶다. 특히 30~40대 미혼, 기혼 여성을 주 고객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20대의 경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윗세대보다 성인용품을 자연스럽게 접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해외 유학에서 우리와 다른 성 문화를 목격하기도 하고, 성관계에 관한 사고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30대나 40대 등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이런 제품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그런 분들께 더 긍정적인 모습으로 건강한 성생활을 돕는 제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성 친화적이라고 했는데, 남성은 배제하나? 곽: 남성 출입금지 구역은 아니다.(웃음) 다만 아직 매장에는 여성을 위한 제품이 더 많다. 기존에 한국에 있던 성인용품점 대부분은 남성이 다니기 더 편한 곳이다. 성인용품 자체가 대부분 ‘남성의 기쁨’을 위한 것으로 인식된다. 여성이 쓰는 기구지만 사실 남성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품이 더 많고, 여성 자신의 기쁨을 위한 제품은 많지 않다. 그래서 여성이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 여성이 방문해도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긍정적인 공간. 궁금한 기구를 살펴볼 수도 있고,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물어볼 수도 있는 곳. 제품을 판매하는 장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손님과 자유로운 성 담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최: 가게 인테리어도 그런 뜻을 최대한 담은 것이다. 기존에 있던 국내 성인용품점과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다. LED 조명으로 가게를 환하게 밝히고 곳곳에 생화와 향초를 뒀다. 최대한 밝고 긍정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다.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여성의 마음을 생각해 물건 자체부터 포장 디자인까지 꼼꼼하게 따져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을 엄선해 판매하고 있다. -기존 성인용품점이 남성 중심적이라고 본 이유는? 최: 국내 성인용품점 대부분은 창고형으로 실내 장식에 거의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깔끔하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여성 성기나 전라 사진이 그대로 노출된 상품을 진열해 둔다. 여성이 방문했을 때 구매욕보다 불쾌감을 더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여성에게 상세한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 문화라는 점이다. 이 제품이 어떤 재질로 만들었고, 몸에 무해하다는 걸 보증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내 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앞으로 내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는 게 성인용품이다. 그런 점에서 같은 여성인 우리가 판매할 때 더 여성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어떻게 이런 사업을 같이 하게 됐나? 원래 어떤 일을 했나?

 곽유라 플레져랩 대표 / 오종찬 기자곽유라 플레져랩 대표 / 오종찬 기자

곽: 원래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던 간호사였다. 외국에서 유학하던 친구에게 소개받아서 여성용 성인용품을 처음 써보게 됐다. 굉장히 만족했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는데, 충격적이었다. 한국에 있는 성인용품 가게는 여성이 들어가기조차 꺼림칙했다. 음침한 곳에 있고, 여성 노출 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고, 남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제품을 소개한다거나. 국내 사정에 실망해 있던 중, 그 친구와 홍콩 여행을 가게 됐다. 그런데 홍콩에서 발견한 성인용품점은 너무나 달라서 충격을 받았다. 인테리어부터 다른 상점과 다름없이 밝고 예뻤고, 누구든 당당하게 드나드는 분위기였다. 그 뒤로 다른 여행지에서도 호기심을 갖고 성인용품점을 찾아가보게 됐다. 대만, 미국, 싱가포르 등을 방문했는데, 대부분의 성인용품점이 밝은 분위기로 영업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느낀 점도 많았다. 임상에서 다양한 환자를 접했는데, 여성 환자 가운데 잘못된 성지식이나 정보로 고통받는 분, 문란한 생활을 하는 배우자 때문에 성매개 감염질환을 앓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서 재미도 줄 수 있고, 건강에 대한 정보도 함께 알려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최정윤 플레져랩 대표 / 오종찬 기자최정윤 플레져랩 대표 / 오종찬 기자

최: 원래는 프리랜서 외신기자로 4년 정도 일하면서 LA타임스, AP통신 등에 기고했다. 동시통역가 겸 번역가로도 일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7년 정도 미국 시애틀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여성 문제나 성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미국의 성인 문화를 접했고, 자신의 성적 주체성에 대해 뚜렷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 어느 날, 시애틀에서 우연히 한 성인용품 가게에 들어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때문에 컵케이크 가게로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성인용품점이었던 거다. 게다가 일하는 직원이 전부 여성이었다. 그런데 제품에 관한 질문에 너무나 당당하고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응대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네 기쁨을 위해 이 제품을 이렇게 사용하면 좋다”고 일러주는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처음 방문한 성인용품점에 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남은 거다. 하지만 한국의 친구들과 대화해보면 괴리감이 너무나 컸다. 성인용품에 대해 아는 친구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상했다. 왜 같은 시대를 사는데 한국 친구들만 이렇게 모르고 살까? 한국에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알려주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그 생각을 대학 시절부터 계속 했다.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한국 젊은이들의 성에 관한 사고는 많이 바뀌었지만 여성을 위한 성인용품에 대한 담화는 여전히 없었다. 내가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지인을 통해 곽 대표를 알게 됐다. 이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공유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우리가 여행하고 공부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여성이 느낀 답답함과 아쉬움을 우리가 바꿔보면 어떨까 하고 뜻을 모았다. -국내 미혼 여성으로서는 쉽지 않았을 도전이다. 가족과 친구 등 주변 반응은? 최: 주변 또래 친구들은 대학 때부터 내 구상에 늘 열광해줬고 응원해줬다.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셨다. 뜻은 좋지만, 왜 하필 네가 해야 하느냐고도 하셨고. 주변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색안경 끼고 볼 일, 그 때문에 겪게 될 괴로움을 염려하신 거다. 당연히 딸이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으시니까. 그래도 이 일을 내가 꼭 해야한다고 생각이 들어 강경하게 말씀드렸다. 음지에 있던 우리 성문화를 양지로 끌어내는 일을 우리 가게가 해 나갈거고, 음란한 문화를 조장하거나 퍼뜨리는 그런 곳이 되지 않도록 할 거다. 다만 자신있게,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담론이 오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뜻을 말씀드렸다. 이제는 응원을 아주 많이 해주신다. 우리도 부모님 의견에 거슬러서 이런 일을 했다면 죄책감을 느꼈을 텐데, 부모님의 응원과 지지를 받고 더 당당하게 일할 수 있어 감사하다. 곽: 나 같은 경우는 부모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셨다. 사업 자금이 부족할 때에 부모님이 도와주시기도 할 정도다. 이제 부모님 세대가 노인의 성생활에 대해 공부하고 계시는데 이런 곳이 꼭 필요하다고 믿어주신다. 사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지해주는 분이 많아 당황스러울 정도다. 특히 가게 동네 주민들이 선입견을 갖고 보거나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구경도 많이 오시고 응원해주신다. -해외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 성인용품 사업은 어떤 수준인가? 최: 해외에는 이미 다양한 연령대, 취향의 남녀에게 성인용품을 소개하는 곳이 보편화돼있다. 여성이 가든 남성이 가든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다양한 제품을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이 창업해 운영하는 회사들도 여럿 크게 성장해 자리 잡았다. 가령 미국에서 내가 처음 접했던 성인용품점은 두 명의 여성이 1993년에 창업한 베이브랜드(Babeland)라는 회사다. 컵케이크 가게로 착각할 만큼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회사로, 지금은 시애틀과 뉴욕에도 여러 지점을 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성인용품 자체가 법의 회색 지대에 있었다. 여성 성기 모양을 본뜬 성인용품 수입 규제가 풀린 게 2008년의 일이다. 소위 ‘보따리 장사’들이 불법으로 유통하는 게 전부였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도록 은밀하게 사야 하는 물품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현금 거래만 하는 일도 많다. 그 때문에 공식 시장조차 통계도 안 잡힌다. 이제 막 다양성을 갖춰가는 시작 단계인 셈이다.

-국내외 제품 비율은 어느 정도 되나? 곽: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국내 기업 한 곳의 제품을 빼고는 국산 제품은 없다. 해외에 있는 많은 선진 회사들이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고 있다. -선별 기준은 뭐고, 어떻게 들여오나? 최: 도매업체를 통해 들여오는데, 우리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거래처를 찾느라 고심했다. 환갑을 넘긴 여성이 대표로 있는 도매업체와 함께 일하고 있는데, 복잡한 전파 인증을 확실하게 받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받는다. 우리 매장에 들여오는 물건은 인체에 완전 무해한지, 믿을 수 있는 브랜드 제품인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기능이 우수한지, 가격은 합리적인지를 꼼꼼하게 따져서 구입한다. 가장 품이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특히 국내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디자인의 해외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가게를 주로 찾는 사람들은? 최: 주 고객을 보면 20대 중반부터 30대 중후반까지 온다. 20대는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와서 까르르 웃으며 재미있게 본다. 좀 연령대가 올라가면 혼자 와서 진지하게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제품에 대해 살펴보고 구매하곤 한다. 곽: 여성끼리 오거나 혼자 오는 분도 많지만 커플도 굉장히 많다. 일종의 데이트코스 같은 느낌으로. 이런 경우 구매로까지 바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웃음) 그래도 남녀가 건강하게, 함께 즐거움을 찾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 같아서 찾아와주시는 것만 해도 대환영이다. 가게 분위기가 워낙 밝고 성인용품이라는 글씨 하나 찾을 수 없다 보니 얼떨결에 들어오는 손님도 꽤 된다. 설명을 들어보고는 재미있어 하며 뭐라도 하나 사들고 가시곤 한다. 최: 손님 가운데 생전 처음 성인용품 가게에 들어와 보고, 성인용품 자체를 처음 손에 쥐어보는 분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오해를 많이 풀고 가신다. “아,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구나” “생각보다 이상하거나 음습한 게 아니구나” 하고. 정말 성인용품 박물관처럼 궁금한 걸 직접 보고, 만져보기도 하고 구경하고 가실 수 있는 공간이 된 것 같아서 그런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손님은 어느 정도 드나? 최: 주말과 평일이 많이 다르다. 평일엔 1~5명씩을 한 그룹으로 칠 때 15~20그룹 정도 온다. 주말에는 정말 많이 오신다. 거의 40~50그룹 정도. 이 근처에서 점심 먹은 뒤 순례하는 데이트 코스가 된 느낌이다. 지난 주 토요일엔 매장 문을 열자마자 대여섯 커플이 투어를 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굉장히 보기 좋다. 이런 관계야말로 정말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게, 연인이 서로에게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거다 라고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신뢰하는 거니까. -의외의 반응이라면? 곽: 여성들이 가게를 많이 찾다보니, 여자친구 손 잡고 온 남성들이 오히려 더 부끄러워하는 걸 보곤 한다. 최: 여자친구와 함께 가게를 찾은 남자 손님이 있었는데, 캡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뒤로 여성들이 우르르 들어오니까 어찌할 바를 몰라하더니, 캡모자 위로 옷에 달린 후드까지 덮어 쓰더라.(웃음) 곽: 의외로 중장년 여성의 호응이 굉장히 좋다. 한 번은 성인용품을 처음 구매하게 됐다는 50대 여성으로부터 장문의 후기가 담긴 메시지를 받았다. 이곳에서 구매한 성인용품 덕분에 남편과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남편도 아내가 처음으로 보여 준 능동적인 모습에 굉장히 놀라고 즐거워했다는 내용이었다.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기 어려웠던 중장년 여성으로부터 비슷한 피드백이 굉장히 많이 온다. 그 때마다 우리가 제대로 사업을 시작한 게 맞구나, 하고 보람을 느낀다.

-문을 연 지 한 달 반 정도 됐는데 영업 실적은? 곽: 예상 이상으로 좋다. 사업 초반에는 적자를 예상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적자는커녕 첫 달부터 선순환되고 있다. 오픈해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게 도움이 많이 됐다. 최: 수지 맞는 사업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게, 우리는 발생하는 매출을 고스란히 더 좋은 제품, 더 재미있고 신선한 제품을 구매해 들여놓는 데 쓰고 있다. 그래도 우리 취지를 잘 알아주는 거래처에서 파격가로 제품을 공급해 주는 등 여러모로 지원해줘서 큰 힘이 된다. -온라인 매장도 있는 걸로 안다. 어느 쪽 반응이 더 좋나? 곽: 온라인에서 취급하는 품목이 더 다양한데,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 반응이 더 좋다. 사실 성인용품은 실제로 몸에 닿는 건데 직접 보지 않고 구매하기에는 위험요소가 많다. 크기가 생각과 다를 수도 있고, 기능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고. 그래서 이런 반응이 좋다. 직접 매장에 와서 선입견을 없애고 즐겁게 보시라는 마음에서 오프라인 매장 가격을 온라인보다 더 낮춰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온라인 매장을 연 건 서울 이외 지역에서 관심 갖는 분들을 위한 거다. 앞으로 지점을 넓혀 나가야겠지만, 아직은 서울에만 있기에 다른 지역 분들을 고려한 조치다. 이런 면에서 온라인 매장은 온라인대로 그 나름의 생명력을 갖고 커 나가길 바라고 있다. 최: 온라인 매장도 기분좋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지금 아마 성인용품 판매 사이트에 접속하면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은 없는지 눈치를 많이 봐야 할 거다. 여성 전라 사진부터 성기 모양을 보여주는 이미지까지 있어 여성이 접속할 때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최대한 차별화하고 싶어서 깔끔하게 보이도록 하는 데에 집중했다. 제품을 실제로 볼 수 없는 온라인의 단점을 보완할 방법도 여러 모로 찾고 있다. 동영상을 제작해 제품의 실제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기능은 어떤지 등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곽: 업종 자체에 관한 부정적인 시선과 제약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정부의 청년 창업자금 지원은 사실 당연히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우리가 건전하고 건강한 성문화 확산에 앞장서려는 취지를 밝히고 싶어도 일단 ‘향락업’으로 분류돼 곤란하다는 말만 했다. 실사조차 나오지 않으니 설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투자도 받지 못하고 공동 대표 두 사람의 힘으로만 인테리어부터 물품 구입까지 다 해 내야 하는데 그 부분이 힘들었다. 마케팅에 있어서도 제약이 심하다. 음습하거나 자극적인 광고를 피하려 하는 우리 취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차단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광고 등록이 안 되는 것은 물론,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도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없다. 올바른 성지식을 알리는 내용을 담았더라도 일반 음란 게시물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고 삭제하기 때문이다. 전문 바이럴 마케팅 업체에 문의해봐도 “그런 업종은 곤란하다”고 거절한다. 그나마 그런 제약이 덜한 게 트위터라, 트위터를 통해서만 겨우 홍보가 가능한 정도다. ‘음란 사회’를 조장하려는 사업이 아니라, 더 건강한 성 담론이 오가는 사회를 만들려는 목표로 세웠는데 그런 식으로 접근하니 맥이 풀린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성인용품 시장의 성장성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해외에서 개발되는 제품을 보면 그야말로 첨단기술의 집약체다. 최근 인기를 끄는 제품들은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사용하는 ‘스마트’ 성인용품들이다. 이런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제품을 만드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으니 크라우드펀딩은 꿈도 못 꾼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요가 계속해서 있는 산업을 우리가 외면하는 동안 해외 업체들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쑥쑥 성장해 나가고 있으니 안타깝다. 최: 그래도 우리가 소신을 꺾지 않는 이유는 우리 뜻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관련 업계 회사들도 올바른 성문화 확산의 취지에 공감해 합작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 앞으로 사업 확장 계획은? 최: 단순한 성인용품 도소매업 가게가 아니라, 성인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목표로 한다. 그래서 개인사업자가 아닌 법인으로 등록했다. 지금은 여성 친화적인 브랜드 하나로 시작하지만, 앞으로 이런 취지를 살린 남성 브랜드나 연령별로 세분화한 브랜드로도 확장하고 싶다. 진정으로 파트너의 기쁨을 생각하는 남성을 위한 남성 전용 브랜드, 중장년층, 노년층, 장애인을 위한 브랜드로도 세분화해 확장해나가는 게 꿈이다. 곽: 우리가 해외 성인용품점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플레져랩만큼 부티크 스타일로 꾸민 성인용품점은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거래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양한 성문화 사업이 발달한 일본에도 이런 곳이 없어서, 일본에 나가서 우리 매장 이야기를 하면 관심을 많이 보인다고 한다. 충분히 해외 진출도 가능한 사업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해외 확장의 포부도 있다. http://m.biz.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5092102771 윤예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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